이런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큰맘 먹고 매수한 주식은 귀신같이 파란 불이 켜지고, 고민 끝에 손절했더니 다음 날부터 미친 듯이 날아가는 모습. 정말 나만 겪는 일일까? “내 계좌만 훔쳐보나?” 싶은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사악한 함정
솔직히 말해, 이건 단순한 불운이나 타이밍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현대 주식 시장, 특히 프로그램 매매가 일반화된 국내 주식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사악한 함정(Trick)’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바로 이 ‘사악한 함정’의 원리와 소위 ‘세력’이라 불리는 주체들이 어떻게 우리 같은 개인 투자자(개미)들을 이용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이 함정을 역이용해서 살아남는 현실적인 방법까지 완벽하게 해부해 본다.
주식 시장의 본성, ‘최대 다수의 고통’을 향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시장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가장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그 지점에 바로 우리 같은 개인 투자자들이 쌓아둔 막대한 물량(돈)이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언제나 최대한의 물량을 노리며, 가장 많은 투자자에게 고통을 주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시장이 우리의 예측을 비웃듯 움직이는 근본적인 이유다. 우리가 신중하게 설정해 둔 손절 라인을 정확히 건드려 물량을 빼앗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잡은 포지션에서 우리를 쫓아낸다. 특히 중요한 경제 지표 발표, 실적 발표, 혹은 예상치 못한 뉴스 이후에 이런 ‘사악한 힘’은 더욱 거세진다.
이런 함정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 상승 함정 (Bull Trap): 주가가 잠깐 오르는 척하며 추격 매수를 유도한 뒤, 갑자기 급락시켜 버리는 패턴이다. “이제 진짜 가나 보다!” 하고 올라탄 개미들은 그대로 물리게 된다.
- 하락 함정 (Bear Trap): 반대로 주가가 무너질 것처럼 급락하며 공포를 조장하고 투매를 유도한 뒤, 갑자기 급등시켜 버리는 패턴이다. 손절한 개미들은 허탈하게 날아가는 주가를 바라만 보게 된다.
[개미 털기 3단계 시나리오] 세력은 어떻게 함정을 설계하는가?
이해를 돕기 위해, 최근 국내 증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를 하나 만들어 본다.
상황: 임상 3상 결과 발표를 앞둔 A바이오 주식이 있다.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기대감을 안고 이 주식을 매수했다.
- 1단계 (미끼 던지기 – 공포 조장): 장 시작 전, 갑자기 ‘임상 결과 발표가 지연될 수 있다’는 애매한 악재 뉴스가 나온다. 주가는 갭 하락으로 시작하고, 전날 매수한 개인 투자자들은 공포에 질려 물량을 던지기 시작한다.
- 2단계 (함정 설치 – 관망 유도): 주가가 일정 수준까지 하락한 후 더 이상 빠지지 않고 좁은 박스권에서 움직인다. 이 모습을 보고 “더 떨어지겠구나” 예측한 단타 투자자들이나 공매도 세력들이 진입한다. 동시에 저가 매수를 노리던 다른 개미들은 섣불리 들어오지 못하고 관망하게 만든다.
- 3단계 (함정 발동 – 물량 흡수): 오후장 막판 혹은 다음 날, 갑자기 “발표 지연은 사실무근”이라는 긍정 뉴스가 뜨면서 주가가 전날의 박스권을 갭으로 훌쩍 뛰어넘으며 급등한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 미리 샀던 개미들: 1단계에서 공포를 못 이기고 손절하며 물량을 털렸다.
-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 2단계에서 진입했다가 3단계의 급등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쫓겨났다.
- 신중한 개미들: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고 지켜만 보다가, 이미 급등한 주가를 보며 아쉬워했다.
결국 이 ‘설계된 시나리오’를 통해 양쪽의 물량을 모두 털어내고, 가벼워진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세력의 목표였던 셈이다.
실제 차트로 보는 ‘개미 털기’ 시나리오: HLB(에이치엘비) 사태
이러한 시나리오가 정말 현실에서 일어날까? 최근 국내 주식 시장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에이치엘비(HLB)의 2024년 5월 FDA 신약 승인 불발 이벤트다. 이 사례는 위에서 설명한 ‘개미 털기 3단계 시나리오’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 1단계 (미끼 던지기 – 초대형 악재 및 투매 유도): 2024년 5월 17일 새벽, 모두가 기대하던 리보세라닙의 미국 FDA 신약 허가가 최종 불발되었다는 최악의 악재 뉴스가 나왔다. 5월 17일, 주가는 시초가부터 하한가(-29.95%)로 직행했고, 다음 거래일인 5월 20일에도 추가로 급락했다. 이 과정에서 신약 승인을 기대했던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엄청난 공포감 속에서 투매를 하거나 손절하며 물량을 털렸다.
- 2단계 (함정 설치 – 바닥 다지기와 혼란): 5월 21일부터 주가는 더 이상 급락하지 않고, 4만 원대 중반에서 5만 원대 초반 사이의 좁은 박스권에서 바닥을 다지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 시점에서 투자자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이대로 끝인가?”라는 생각에 추가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공매도 등)와, “악재는 반영됐다”고 생각해 저가 매수를 노리는 투자자들 사이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일어난다. 세력 입장에서는 남아있는 불안한 물량을 털어내고,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최적의 구간이었다.
- 3단계 (함정 발동 – 급반등과 숏 스퀴즈): 5월 말부터 회사 측에서 FDA와 미팅 계획을 밝히고, CRL(보완요구서한)의 내용이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내비치기 시작했다. 투심이 급격히 회복되면서 주가는 V자 형태로 가파르게 반등했다. 특히 6월 초에는 연일 급등하며 2단계 박스권에서 하락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을 완벽한 함정에 빠뜨렸다. 이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다시 사야만 하는 ‘숏 스퀴즈’ 상황에 몰리며 주가 상승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처럼 에이치엘비의 사례는 단순한 기술적 분석을 넘어, 뉴스(재료), 투자자 심리, 세력의 의도가 어떻게 결합되어 ‘사악한 함정’을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교과서다.
함정을 역이용하는 ‘영리한 개미’가 되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악한 시장에서 당하기만 해야 할까? 다행히도, 이 함정의 원리를 이해하면 오히려 역이용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질문을 바꿔라: “어느 쪽이 진짜 표적인가?”
갑작스러운 뉴스나 급등락이 발생했을 때, “이제 오르나/내리나”를 고민하기 전에 딱 한 가지만 질문해 봐야 한다.
“이 움직임으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세력의 진짜 표적은 누구인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감정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시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한 3가지 현실적인 대응 전략
전략 | 실행 방법 | 핵심 포인트 |
1. 한 발 물러서기 | • 급등락 초기에는 절대 진입하지 않는다. • 최소 1시간 이상 지켜보며 고점과 저점이 형성되는 것을 확인한다. | • ‘혹시 놓치면 어떡하지?’라는 조바심(FOMO)을 버리는 것이 핵심이다. |
2. 물량 조절하기 | •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평소보다 물량을 1/3 ~ 1/2로 줄인다. • 한 번에 모든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2~3회에 걸쳐 분할 매수/매도한다. | • 손실을 최소화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
3. ‘진짜 신호’ 기다리기 | • 초반에 형성된 박스권(고점-저점)을 의미 있는 거래량과 함께 확실히 돌파할 때까지 기다린다. • 거짓 돌파(False Breakout)에 속지 않도록 주의한다. | • 인내심이 가장 큰 무기다. 성급한 추격 매매는 함정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
물론 이 전략이 100%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최소한 시장의 ‘사악한 의도’에 휘둘려 큰 손실을 보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 주식 시장은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장 많은 투자자에게 고통을 주는 방향(함정)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 이 함정은 개인 투자자의 예측 가능한 심리와 행동 패턴을 역이용하여 물량을 빼앗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추격 매매를 멈추고,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하며 확실한 신호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수적이다.
돼지가 도살당하는 동안 황소와 곰은 돈을 번다는 월가의 격언이 있다. 시장의 ‘사악함’에 순응하며 도살당하는 돼지가 될지, 그들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같은 편에 서는 황소나 곰이 될지는 우리의 대응에 달려 있다. 부디 이 글이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